가난한 사람은 왜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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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 복지 효과 체험할 기회 없었다.
■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내만복 운영위원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자신의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꼭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저소득층은 세금은 적게 내고 혜택은 많이 받는 복지국가의 수혜자이다.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복지국가의 확대를 지향하는, 저소득층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는 세력이다. 저소득층이 합리적이라면 복지국가의 확대와 진보정당의 집권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꼭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왜 빈곤층의 정치의식은 보수적일까?
한국의 빈곤층은 복지국가의 확대도 다른 계층보다 덜 지지한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인식조사(복지패널 제5차 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소득격차의 해소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주장에 일반인은 16%가 '매우 동의'한 반면 저소득층은 14%만 그렇게 답했다. 사회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려야한다는 주장에는 일반인 중 4%가 '매우 동의'한 반면 저소득층은 그 절반인 2%만 그렇게 했다.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반인은 7%가 '매우 동의'한 반면 저소득층은 3%만 그렇게 했다.
저소득층이 복지국가의 확대에 미온적이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런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 대해 사회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설명을 제시했다. 립셋(S. M. Lipset)은 노동자계급이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나 경제적으로는 진보적, 좌파적이라고 보았다. 이들을 문화적으로 보수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생활조건이다. 즉 권위주의적 성장환경, 짧은 교육기간, 코스모폴리탄적 세계관 형성의 기회 부족 등은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자연스럽게 보수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로 인해 경제적 영역에서는 재분배와 개입주의적 정책을 선호하게 된다.
벨기에의 정치학자 안톤 더크스(Anton Derks)는 이런 립셋의 설명이 자기나라 빈곤층에게 잘 들어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빈곤층은 사회경제적으로도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재분배와 개입주의적 정책, 그리고 좌파정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크스는 그 원인을 빈곤층이 가지고 있는 엘리트와 기성 정치질서 전반에 대한 불신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하층의 박탈감은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을 낳고 이 불신은 정치체계에도 투사된다. 기성 정치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 정부와 정치체계에 대한 의구심, 재분배정책에 대한 냉소, 세금에 대한 의심이 그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런 불신과 냉소는 사회연대의 담론을 갉아먹고 사회적 불만이 좌파적 정치 프로젝트로 변환되는 것을 방해한다. 믿을 곳은 아무 데도 없으며 각자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각자도생 의식이 유포된다.
이런 더크스의 설명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권력과 징세에 대한 피해의식, 진보든 보수든 지배 엘리트층 전체에 대한 불신, 집단주의적 사회프로젝트에 대한 반감과 회의, 공리주의적 개인주의 등은 한국의 하층에게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투표해서 뭐해? 가난한 사람은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다 그 놈이 그 놈이지", "뽑아주면 뭐해? 나한테 도움이 안 되잖아요". 우리 빈곤층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이다. 오랜 식민통치와 권위주의 정부 시기 동안 경험한 착취, 억압, 시민권의 부정이 이런 태도를 배양한 역사적 배경일 것이다. 여기에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정치구도 속에서 기성 엘리트 및 정치인들의 부패와 무책임성은 이런 불신과 반감을 더욱 확대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저소득층 복지태도의 비일관성
그런데 이런 한국 저소득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보수주의적 입장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도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일부 저소득층의 자기배반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저소득층이 복지확대와 세금확대를, 고소득층이 세금축소와 복지축소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이에 따라 복지태도의 전체적인 윤곽은 뚜렷한 계급성을 나타낸다. 반면 우리의 경우 계급별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거나, 심한 경우 고소득층이 복지 확대와 증세를 지지하고 저소득층이 이를 반대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저소득층은 유난히 비계급적 복지태도를 보일까?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사이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의 세 문항을 교차분석하여 계층별 결과를 얻은 것이다. 여기서 비일관성이란 ①소득격차 해소에 대한 정부책임과 감세 필요성에 동시에 동의하는 태도, 혹은 ②소득격차 해소에 대한 정부책임에 동의하면서 증세 필요성에 반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진보적 일관성은 ①정부의 분배책임에 동의하면서 감세 필요성에 반대하는 태도, 혹은 ②정부의 분배책임과 증세의 필요성에 동시에 동의하는 태도를 뜻한다. 보수적 일관성은 ①정부의 분배책임과 증세의 필요성에 동시에 반대하는 태도와, 혹은 ②정부의 분배책임에 반대하면서 감세필요성에 동의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중립은 이 설문들에 대해 '동의도 반대도 하지 않음'을 택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두드러진 특징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현저하게 복지태도의 비일관성이 높다는 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능조립직 및 단순노무직의 경우 거의 반가량이 '분배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감세'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하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분배책임-복지를 위한 증세 교차분석에서도 사무직 및 판매직과, 기능조립직 및 단순노무직의 경우 비일관적 태도를 보이는 비율이 전문직 및 준전문직의 2배에 가깝다. 결국 하층의 경우 비일관성이야 말로 비계급성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층계급으로 갈수록 더 높게 나타나는 비일관성은 복지태도 전체의 탈계급적 윤곽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객관적 이해관계에 따라 복지확대와 증세, 정부의 분배책임 강화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되는 하층계급이 강한 비일관성을 보이니 객관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계급적 태도가 나타나기가 그만큼 어렵게 되는 것이다.
취약한 복지체험, 파편화된 정치적 이익대표 제도
그렇다면 이런 비일관성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하층 계급은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비논리성을 갖기 쉬우며, 권력과 책임상의 지위, 그리고 풍부한 네트워크의 부재로 인해 특정 대상들을 상호연관 지어 생각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자기 사고의 모순을 깨닫기 어려워 이데올로기적 통합성을 성취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일반적 원인 외에도 다음과 같은 한국적 특수성은 한국의 하층계급의 비일관적 복지태도를 배가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우리 복지제도의 특성으로 인한 복지체험의 부족이다. 복지국가의 편익과 비용,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해 어떤 확고하고 일관된 견해를 발전시키기엔 우리 복지국가의 역사가 너무 일천하다. 게다가 우리의 복지 프로그램들은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다. 사회보험의 형식적, 법적 포괄범위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영세 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 종사자들, 즉 상대적 저소득층은 제도 밖에 남겨져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재정상의 이유로 빈곤인구의 3분의 1 가량만을 포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하층을 배제하는 복지제도의 특징은 하층의 복지태도에 나타나는 비일관성과 비계급성의 중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제도의 문제이다. 스웨덴인은 미국인보다 정치적 태도가 더 통합되어 있고 투표도 태도에 더 일치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학자들은 그 이유가 정당체계의 차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정당이 선택가능한 대안과 그것의 계급적 의미를 선명히 프레이밍해 보여주는 초점(focal point) 구실을 함으로써 분배원칙이 정치적으로 표출될 때 개인은 일관된 태도를 갖기 쉽다는 것이다. 스발포르스(S. Svallfors)라는 스웨덴 학자도 정당이나 노동시장 제도를 통해 분배가 더 정치화될수록 복지태도의 계급차이도 더 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분배원칙이 정당이나 노조를 통해 정치적으로 표출되면 개인은 스스로를 원자화된 시장행위자가 아니라 특정이익을 공유하는 집단 성원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고 계급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노동자계급의 태도가 전혀 통합적일 수 없는 이유로 좌파정당 부재뿐만 아니라, 약한 노동시장제도들, 약한 노조조직, 시장에 의해 조정되는 매스미디어에의 노출 등을 든다.
복지정치의 게임 규칙 변화시켜야
이런 정치제도는 복지정치에서 누구의 이익도 제대로 표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었다. 높은 교육수준을 갖는 고소득층은 자신의 이익을 자각하는데 이런 프레이밍 장치에 훨씬 덜 의존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을 비롯한 복지정치의 제도적 여건 개선이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균열이 정치사회에 제대로 드러나고 그것이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복지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복지정치의 게임규칙을 변화시킬 제도개혁이 필요한 것이다.